<스압주의> <독자기고> 페미니즘 이슈에서 남성들은 왜 패배하는가
편집자 주 : 훌륭한 글을 써주신 이연님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단언할 수 있다. 젠더 갈등과 페미니즘 이슈에 관한 논의가 지금과 같이 지속된다면, MZ세대 남성들의 패배는 필연이다.
페미니즘 이슈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MZ세대 남성 집단과 타 세대 및 성별 집단이 정의하는 “페미니즘”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남성 MZ세대를 제외한 한국 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페미니즘’을 ‘성평등주의’와 동의어로 인식한다. 그리고 실제로 사전적 정의는 그것이 맞다. 브리태니커는 페미니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Feminism, the belief in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equality of the sexes. (후략)”
이는 “페미니즘은 성별에 있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평등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다.”라고 해석된다. 이는 정확히 ‘성평등주의’와 일치하는 개념이며, 학계, 정치권 등 오프라인에서는 거의 대부분 이러한 의미를 공유한다.
하지만 남성 MZ세대는 ‘페미니즘’을 ‘메갈리아’, 혹은 ‘워마드’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둘을 완전히 동의어로 인식하거나, 최소한 메갈리아 및 워마드로 대표되는 인터넷 래디컬 페미니즘과 다른 페미니즘 분파들이 차이가 전무하다고 주장한다.
남성 MZ세대는 워마드의 각종 해악스러운 범죄들을 보며 그들을 ‘일베’와 동일시하면서 과거 본인들이 일베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공격한다. 그런데 그러면서 하는 말이 “페미니즘 척결”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의 일반적 정의는 ‘성평등주의’와 일치하므로, 남성 MZ세대 집단 외부의 눈에는 남성 MZ세대가 마치 성평등주의에 반감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즉, 외부에서는 남성 MZ세대 전체를 ‘일베’처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남성 MZ세대는 과거 일베가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을 때 앞장서서 그들을 몰아냈고, 그 성과를 분명히 사회로부터 인정받았다. 그리고 현재, 메갈리아나 워마드 등이 일베와 유사한 행동을 보이자 과거 했던 것과 똑같이 이들을 몰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노력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사회 전체가 본인들을 일베로 몰아가며 배척한다. 이러니 남성 MZ세대 입장에서는 인지부조화를 느끼며 본인들끼리 더욱 똘똘 뭉쳐 대항하고, 그럴수록 외부는 더욱 이들을 일베로 확실히 낙인찍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용어 정의의 통일”이 선결되어야 진정으로 양측간의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두 집단이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른 뜻으로 사용하게 되었는가? 이 과정을 이해하려면 먼저 페미니즘의 역사를 잠시 훑어볼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은 크게 3세대로 구분된다. 바로 최초의 리버럴 페미니즘, 70년대를 주름잡던 래디컬 페미니즘, 그리고 90년대 이후의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다.
1세대 리버럴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 발원한 18세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가장 원론적인 페미니즘이다. 이들은 수십 년간 사회에 저항하며 우선 여성 참정권을 얻어냄으로써 정치적 성평등을 이룩했다.
그 후 페미니즘은 정치 외의 문제, 즉 경제, 사회, 문화적 성평등을 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2세대 페미니즘인 래디컬 페미니즘이 탄생했다. 통념과 달리, 래디컬 페미니즘이 처음부터 막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원론적으로 래디컬 페미니즘은 육체적 성역할, 즉 성관계를 제외한 문제에서 사회적인 성역할이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는 페미니즘이다. 예를 들어 래디컬 페미니즘은 “남편은 돈을 벌고 아내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식의 성 고정관념에 반발하는 성평등주의였던 것이다. 그러나 래디컬 페미니즘에 점차 여성우월주의와 성기환원주의, 사회계급론이 결합하며 극단적인 행태를 보인다. 이들은 성기환원주의에 근거한 성별을 계급으로 인식해 여성 전체가 모두 남성 전체보다 낮은 대접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나중에는 이를 뒤집어 아예 여성 계급이 남성 계급을 지배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마저도 등장한다.
그러자 이에 대한 반동으로 90년대에 접어들면서 3세대 페미니즘인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 등장한다.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은 사회계층론을 받아들여, 사회적 약자라는 게 반드시 성별에 의해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시작한다. 그래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은 장애인, 노약자 등 성별을 떠난 사회적 약자들, 그리고 남녀의 대결구도에서 소외당하던 성소수자들에 주목하며 이들과 연대하여 만인의 평등을 이루고자 한다. 90년대 중후반에는 페미니즘 내부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과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 서로 논쟁하며 그 여파로 또한 트랜스 페미니즘, TERF,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등등 여러 페미니즘 분파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래디컬 페미니즘은 그 극단성 때문에 지지를 점차 잃어, 2000년대 중반 즈음에는 거의 힘을 잃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바로 ‘인터넷의 보급’이다. 인터넷을 통해 페미니즘은 기존과 달리 일반 대중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그 사상을 더욱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이 생긴다. 그래서 최근 학계에서는 이 ‘페미니즘의 인터넷 활용’을 기점으로 4세대 페미니즘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 구분하자는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세대 구분 논의를 넘어서 페미니즘이 인터넷을 활용해 일반 대중에게 더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 다시 한국의 상황으로 돌아와보자. 한국의 MZ세대는 인터넷에서 페미니즘이 DC 메르스 갤러리에서 시작되어 메갈리아를 거쳐 워마드로 이어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들의 극단적인 행위들을 비난하며 여성단체들을 비롯한 페미니스트들이 이들에게 제동을 걸어주길 요구한다.
그러나, 문제는 오프라인에서 페미니즘을 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인터넷 환경에 무지한 기성세대라는 점이다. 기성세대가 중심을 잡고 있는 오프라인 여성단체들은 메갈리아에 제동을 걸 이유가 없다. 그들의 눈에 메갈리아는 온라인을 통해 페미니즘을 일반 대중에게 전파하려는 선봉장인 것이다. 온라인에 무지한 기성세대는 그들이 인터넷 세상에서 실제로 어떤 행동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딱히 관심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프라인의 여성단체들은 온라인 페미니즘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단순히 원론적으로, 기존에 학계에서 논의되어오던 것에 근거하여 “메갈리아 또한 신세대의 페미니즘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앞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의 등장 이후 2000년대를 거치며 래디컬 페미니즘은 점차 그 힘을 잃어갔다고 설명했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오프라인에서 점차 약해져가고 있는데 갑자기 온라인이라는 신지평이 열렸다. 그러니 그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와 인터넷 환경에 적응해 세력을 넓히는 데에 페미니즘 분파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오프라인에서 래디컬 페미니즘의 쇠퇴가 역설적으로 그들이 온라인 세상에 가장 적극적으로 적응하여 온라인에서 가장 먼저 집단화한 페미니즘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고 오프라인의 기성세대 페미니즘 단체들은 이를 간과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니 MZ세대는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들의 눈에 한낱 범죄자 집단에 불과한 메갈리아를 페미니즘 진영에서 옹호한 꼴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래서 남성 MZ세대를 중심으로 페미니즘과 메갈리아, 워마드가 똑같은 놈들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된 것이다. “페미니즘 진영에서 자체정화의 움직임이 없다.”라는 주장을 하는데, 실제로 오프라인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어왔는지 알 턱이 없으니 그런 것이다. 결국 기성세대는 기성세대대로 신세대의 현재를 모르고 신세대는 신세대대로 기성세대의 과거를 모르니 이들이 함께 미래로 나아가려 하자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페미니즘을 일반 대중에게 전파한다는 아이디어가 예상치 못한 또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바로 ‘페미니즘의 인터넷 커뮤니티화’이다.
MZ세대는 남녀를 떠나 사회 구성원 그 누구보다 인터넷 환경에 친화적이다. 이들은 인터넷에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서로 소통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데 이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집단의 파편화’이다. 그 특성상 이합집산이 지나치게 쉽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서로에게 공감하며 확증편향에 빠지고 결과적으로 이는 커뮤니티’간’의 소통을 단절한다. 그리고 가끔 생각이 다른 커뮤니티간의 접촉이 생기면 서로 진영논리를 펴며 서로 극심한 욕설을 퍼붓게 된다.
이 상황에서 래디컬 페미니즘이 온라인으로 제일 먼저 넘어와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모든 페미니즘 중 처음으로 온라인에서 집단화하여, 자신들만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이렇게 되니 인터넷 커뮤니티 특유의의 진영논리, 막말 문화가 인터넷에서의 페미니즘 논의에 그대로 이식된다. 온라인 환경에 가장 익숙한 MZ세대가 온라인 환경을 통해 제일 처음 접한 페미니즘은 극단적인 래디컬 페미니즘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이들을 기존의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의 문법으로 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MZ세대 사이에서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의 페미니즘 논의에조차 그 특유의 문화가 전염된다.
결국 MZ세대에서는 남성측은 여성측을, 여성측은 남성측을 하나의 거대한 인터넷 커뮤니티로 인식하며 서로 진영논리를 펴며 욕만 하고 있으니, 페미니즘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을 할만 한 환경 자체가 형성되지 못한다. 페미니즘 논의에 있어서는 남성들 입장에선 모든 여성들이 적이 되고, 여성들 입장에선 모든 남성들이 적이 되어버려 서로 전쟁을 위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꼴이다. 서로가 각자의 내부에 있는 극단주의 세력들을 관리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아무리 주장해봐야, 그저 상대 진영 극단주의자들의 케이스들을 반복 열거하며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인터넷 환경의 특수성이 집단간 소통의 단절을 낳고 건전한 토론장 형성을 방해하면서 용어의 정의조차 통일되지 못하게 만들었고, 온라인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기성세대가 이를 제대로 중재하지 못하고 오히려 신세대가 그들을 오해하게 해 그 결과 사건을 키우면서, 도저히 해결되지 못할 것만 같은 현재의 젠더 갈등을 낳은 것이다.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와서. 페미니즘 이슈에서 남성 MZ세대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이들이 사회에서 소수이고 약자이기 때문이다. 남성 MZ세대만이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타 세대와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데 그러면서도 외부와의 소통에는 가장 소극적이다. X세대가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현재 MZ세대에겐 힘이 없는데, 본인들끼리 확증편향에 빠져 행동은 마치 본인들이 강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상대방을 원천적으로 배척하고 일단 내가 옳다고 핏대를 세운다. 이러니 남성 MZ세대의 주장은 사회에서 영원히, 철저히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성 MZ세대는 본인들이 현재 소수이고 약자임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바로 상대방의 주장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현재 남성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반페미니즘 계열에서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다는 주장 자체를 거부한다. 오히려 남성들이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현재의 대한민국은 이미 여성우월주의 사회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남성혐오는 존재할 수 없다”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주장을 그대로 받은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메갈리아가 처음 등장하여 각종 파렴치한 행동을 하면서 말했던 것이 ‘미러링’이었다. 그런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는가? 남성 MZ세대로서 메갈리아의 행태를 보아온 사람이라면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건 미러링하는가?
현재의 극단적인 젠더 갈등 상황에서, 남성측이나 여성측이나 서로의 아픔 자체를 부정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다. 남성도 여성도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차별을 경험한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가 아픔이 있고 남녀 모두 그에 대한 위로나 대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가 나의 아픔만이 존재하고 너의 아픔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며 악을 쓰기만 하니, 답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페미니즘 논쟁에 팃포탯을 적용하자는 말이 MZ세대 반페미니즘 진영에서부터 나왔다. “네가 나를 때렸으니 나도 너를 때린다. 네가 나를 때리지 않는다면 나도 너를 때리지 않겠다.” 하는 식의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강자가 할 수 있는 말이다. 남성 MZ세대는 약자다. 약자는 “내가 너를 때리지 않을 테니 너도 나를 때리지 말아라.”라고 말해야 한다. 팃포탯 전략은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보복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선의를 베푸는 쪽이 나와야 하고, 그러면 또한 선의로 보답하면서 선순환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상대방의 선의가 가장 절실한 약자인 남성층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지금 사회의 주류는 남성들이 사회에서 차별받는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남성 MZ세대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여성들이 사회에서 차별받는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공론장을 정화해야 한다. 본인들도 ‘성평등주의’에 분명하게 동의하며, 그들이 비판하는 것은 ‘인터넷의 극단적인 래디컬 페미니즘 커뮤니티’임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본인들도 아픔이 많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그 다음이다. 너는 약자니까 아무 말 말고 조용히 당하고만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얻으려면 일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약자는 자존심을 잠시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픔을 알리는 방법이 지금처럼 과격해서도 안 된다. 혹자는 말한다. 지금까지 반페미니즘 진영이 과격한 방법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무시당한 것이고, 반대로 래디컬 페미니즘 진영의 과격한 방법은 통해서 지금 이렇게 됐으니 과격하게 하는 게 맞다고.
하지만 래디컬 페미니즘의 입장과 반페미니즘의 입장은 다르다. 래디컬 페미니즘 세력의 과격함이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MZ세대 남성층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는 아직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과격한 방법을 안 썼기 때문에 무시당한 거라고? 아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성과도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껏 손 놓고 아무 것도 안 해놓고는 아직껏 성과가 없으니 안 좋은 걸 미러링 하겠다니? 이 상황에서 극단적인 목소리들이 힘을 얻으면 사회는 다시 그들을 외면할 것이다.
다행히, 이제는 그래도 일부에서 MZ세대 남성층에게 주목하고 있다. 왜? 바로 선거 덕분이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그들은 국민의힘에 몰표를 줘 민주당에 대한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현했으며, 2030 남녀간 지지정당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젠더갈등이 그 분노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이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나선 이준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이준석 현상’을 빚어내어 국회의원도 한 번 못 해봤던 당내 비주류 이준석을 무려 당대표로 올려놓았다. 그때부터 정치권이 이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약자의 언어는 바로 “투표”이다. 가장 정석적이고 원칙적인 방법. 절차적으로 정당하며, 지금까지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 불과 몇 개월 전 증명된 방법이다. 약자는 약자다워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사회적 약자가 마치 본인이 강자인 양 행동하면 사회는 그를 약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 갈등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고, 남성층은 영원히 패할 것이다. 일생 영겁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