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 다시 탈레반이 들어서고 압제에 탄압받을 예정인 아프가니스탄인이 탈레반이라는 이름의 재난을 피하러 무더기로 피난민이 되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난민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 뭘 시켜놓고 불만만 늘어놓지 않으며 마약을 하지 않고 세금만 잘 낸다면 그 누구든 필자의 이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 난민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행동패턴, 즉 가치관 때문일 것이다. 세속에 근본을 둔 영미법과 대륙법과 다르게 샤리아는 종교에 관점을 두고 있으며 태형이나 사형을 적극적으로 집행하는 등 폭력성이 다분하다. 그래서 세속주의자가 다수인 자유진영의 국민들은 그들을 미개하다고 깔보지만 그 저의는 폭력에 대한 공포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슬람은 보다 세속과 합의를 보고 세속은 이슬람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라는 현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그럴싸한 이유로 혐오하고 배척한다. 종교가 속세와 타협하면 그것은 정치이지 종교가 아니게 되며 세속은 그동안 이슬람이 저지른 만행을 용서하기엔 많이 아프단다.
서로 미워하라. 필자의 제안이다. 어차피 말을 해줘도 들어 처먹을 생각이 없다면 지금처럼 해오듯 미워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필자가 쭉 토론해온 바 느낀 점은 종교전쟁만큼 무의미한 토론도 없다는 점이다.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수용할 의사가 없다면 반목하고 증오하는 것이 어줍잖은 화해의 노력보단 낫다는 주의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이 한마디는 해주고 싶다. 미워하며 사느라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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